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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아시아문화의전당 예술극장 개관 축제를 보고 | 이용관
작성일 2015.10.23 글쓴이 관리자 조회수 2212

B급이라도 되기 위해? B급이 안되기 위해!

- 아시아문화의전당 예술극장 개관 축제를 보고

 

한국문화예술경영학회가 웹진 <문화와 경영>을 발행한다. 문화예술경영계와 학회의 동정, 학술대회 정보와 더불어, 때마다 칼럼을 싣기로 한다. 첫 칼럼은 최근 개관축제와 함께 모습을 드러낸 광주아시아문화전당, 그 중에서도 예술극장에 대한 예술경영인으로서의 소회이다. 좀 길지만 일독을 바란다.

 

2년 반전 안타깝게도 일찍 세상을 떠난 한 예술경영인과 주고받았던 말을 기억한다. 어느 날 그가 그랬다. “공공문화기관은 잘해야 B급밖에 안 되더라.” 내가 그랬다. “A급을 지향해야 B급이라도 되더라”. 받아들이기 거북한 사람들도 있겠지만 이게 부정하기 어려운 현실임을 경험해 본이들은 알 것이다(물론 예외도 많다). 문화적인 그것과 걸맞지 않는 이런 저런 경직된 규제와 규정, 조직의 불안정성, 때로는 왔다갔다하는 예산, 거기다 정치리더십이 바뀌면 경영자도 달라지는 환경이 그렇게 만들어 버리기 일쑤다. B급이라도 꾸준히 유지되면 그나마 다행인가?

 

지난 9월 초. 막 개관페스티벌을 시작한 광주아시아문화전당 예술극장에서 공연 몇 편을 보고 왔다. 곳곳에서 열리는 각양각색의 작품을 보기위해 동분서주하는 관객들 틈엔 외국인도 많아보였다. 어떤 신문은 외국인들이 이런 컨셉을 가진 대형문화시설이 광주에 들어선 사실을 경이의 눈으로 보고 있다고 보도했다. 서울에서 내려온 부지런한 공연계 인사들도 여럿 마주쳤다. 한편으론 볼만한 공연들에 대한 기대와, 또 한편으로는 그간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문화전당과 예술극장의 탄생을 눈으로 확인코자 하는 호기심이 얼굴에 드러나 보였다. 우리의 희망이라는 젊은 관객들도 어김없이 객석을 채웠다. 하기야 젊은이들 말고 누가 여기까지 와서 이 낯설다는 공연들과 마주서랴.

같은 시기 문화창조원에서는 아시아를 주제로 한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고, 어린이문화원의 개관축제도 한창이었다. 그 중 앞마당에서 벌어진 삐에로 공연엔 가족관객들이 붐볐다. 바로 옆 금남로 거리에서는 어린이 문화원 공연팀의 퍼레이드와 사물과 전통춤으로 구성된 (아마도)동네 축제와 얽히는 모습도 보였다. 사방 오백 미터도 안 되는 공간에서 전통과 현대, 낯섬과 낯익음, 어린이와 성인, 외국인들까지 나름대로 어울리며 공존하고 있었다.

 

필자는 광주아시아문화전당, 그 중에서도 예술극장과는 태생 전부터 인연이 있었다. 2008년에 처음 시작된 아시아예술극장 운영방안연구에 책임연구원으로 참여한 게 그것이다. 처음 문화전당 준비팀이 제시한 아시아의 문화자원을 재료로 하는 창작팩토리개념의 제작중심 극장이라는 키워드는 연구팀에게 매우 낯설고 의아했다. 걱정도 되었다. “서울도 아닌 광주에서, 그렇게 낯선 컨셉이 먹히겠는가? 두고두고 골칫거리가 될 것이다라는게 당시 문화계의 중론이기도 했다. 연구과정에서 만나 본 공연예술계 인사들 중 이런 걱정을 하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런데 연구진은 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이 컨셉에 빠져들었다. 유사한 세계의 극장들을 둘러보면서 어느 정도는 확신도 갖게 되었다. 연구가 끝날 즈음 그 결과를 가지고 몇 개 연구팀이 합동 세미나도 열었는데, 이미 우리는 여전히 같은 우려를 내비치는 사람들에게 적극적인 변호자로 맞서고 있는 자신들을 발견하고 놀란 기억도 있다. 1년은 어쩌면 애증(?)의 시간이었기도 하다.

 

그로부터 7년이 흘러 우려와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문화전당과 예술극장이 여전한 우려와 기대 속에 문을 연 것이다. 개관에 즈음한 언론 보도는 대체로 세 가지 기류로 분류할 수 있겠다. 비교적 객관적 시각으로 바라본 기자도 있었지만 최초의 우려를 그대로 반복하거나 그런 뉴앙스를 풍기는 기사가 중앙지에는 더 많은 듯했다. 광주 언론들은 대체로 긍정과 기대를 보여주었다. 페이스북에는 태생부터 잘못되었고 앞으로도 뻔한 괴물이 될 거라는 혹평을 올린 공무원도 있었다. 외국의 예술인들만 호평과 놀라움을 표하고 있었던 것이다. 예상했던 대로다.

 

나의 첫 느낌은 뭐랄까, 생각했던 것보다 쓸만할 것 같고, 걱정했던 것보다는 그래도 다행이다라는 감정이었다. 당초 운영설계보다 인력이나 예산규모는 많이 줄었지만, 그래서 프로그램 규모도 줄었겠지만(본격개관은 11월부터라 했다), 온갖 난관 속에서도 애초의 의도대로 이만큼이나 왔다는 것은 다행이면서 한편으로는 기이하기도 했다. A급까지는 아니더라도 B급은 확실하지 않을까. 공연의 내용들을 봐도 그 의도가 잘 드러나 있었고, 다소 거친 구석이 있기는 해도 준비한 사람들의 노고가 내 눈에는 훤히 보였다고 할까. 다양성과 새로움을 보여 줄 이만한 문화시설이 광주에 들어섰다는 것은 광주 문화계와 시민들에게는 큰 복이지도 싶었다. “부럽네! 광주사람들은 좋겠다!”가 나와 함께 간 동료의 일성이었다. 광주의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어린이문화원에서 예술극장에 이르기까지 경험할 새로운 세계와 넓은 문화적 스펙트럼을 상상해 보라. 광주의 예술계가 문화전당과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고받으며, 또는 신진그룹들이 성장하면서 어떻게 진화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생각해보면 우리에게 낯설게 보이는 이런 컨셉은 실상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다. 멀리는 이미 백여 년 전부터 차례로 등장한 상징주의니 표현주의니 부조리니 행위예술이니 하는 것들의 연장이고, 가까이는 우리가 십몇 년 전부터 제도권에서까지 인정해 온 다원예술이니 융복합이니 하는 것들과 그다지 다르다 생각할 것이 없다. 한다하는 세계예술계서는 낯선 것들이 결코 아닌 것이다. 문화전당을 위해 보낸 10년 세월 동안만도 우리네 세상도, 예술도, 관객도 많이 변했다는 걸 실감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아시아문화전당과 예술극장은 아시아나 이 한반도에 오로지 하나뿐인 외로운 섬이 아니라 세계와 아시아와 서울에서 광주를 거쳐 지역으로 퍼지는, 그리고 다시 서울과 아시아와 세계로 가는 선순환의 징검다리일 것이다.

 

어느 연극평론가도 썼듯이 문제는 지금부터다. 여전한 우려를 불식하고 그런 꿈을 가능케 하는 것은 이제부터 누가 어떻게 힘을 모으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지속가능성의 확보가 중요할 것이다. 지속가능성을 논할 때, 먼저 운영주체의 문제가 있다. 한때 정부와 광주는 이 거대시설을 국가가 운영하느냐, 법인으로 가느냐는 문제로 샅바 싸움을 한 적이 있다. 법인으로 가라는 것은 정부는 손을 떼겠으니 광주가 책임지라는 말로도 들렸다. 이 문제는 당분간 정부가 운영하다가 어느 정도 틀이 잡히면 법인으로 가는 것으로 일단락되기는 했으나, 만일 어느 순간 법인으로 가더라도(이는 운영의 전문성과 자율성을 보장하는 의미에서는 바람직한 일이다) 지방재정의 여건이나 불안정성을 고려한다면, 소유는 여전히 국가에 두고 정상적인 운영을 보장할 만큼의 예산은 계속 지원하는 것이 지속가능성을 담보하는 일이라고 필자는 믿는다.

 

다음엔 컨텐츠 혹은 프로그램의 성격을 지켜가야 한다. 언론이나 여러 전문가들이 우려하듯이 초기에 관객이 부족한 문제는 필연적으로 겪어야 할 과정일지도 모른다(많은 경우가 그렇다). 그렇다고 좌고우면, 부화뇌동하여 프로그램의 컨셉을 이리저리 바꾸려는 시도를 하게 된다면 그야말로 이 거대한 문화시설 건립의 대의도 잃고, 예술가들의 꿈도 져버리고, 종국에는 시민과 관객들의 마음도 얻지 못하고 무관심의 앙상한 뼈대만 남게 될 것은 불문가지다. 기존의 예술, 모더니즘에 기초한 낯익은 예술은 지금 도처에 널려 있다. 공연장에도 미술관에도 공원에도 학교에도 복지관에도 양노원에도, 서울에도 광주에도 제주에도 시골 구석구석에도. 다시 하나를 보탠다는 것이 망망대해에 물 한바가지 더 붓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세계적으로 낯선 컨셉으로 성공한 사례도 많다. 뉴욕 빈민가에 위치한 브룩클린 아카데미 오브 뮤직(BAM)에서 30년 넘게 지켜온 Next Wave Festival은 실험예술의 축제가 왜 잘 될 수 있는지, 왜 뉴욕은 물론 세계의 관객이 몰리면서 세계 예술계에 크나큰 영향을 미치는지 배울 만한 모델이다. BAM이 뚜렷한 신념과 뚝심으로 이 축제의 컨셉을 지켜내지 않았더라면, 오늘날 우리는 세계적인 실험예술제를 볼 수 없었을 것이며, 머스 커닝엄, 피나 바우슈, 로버트 윌슨, 탐 웨이츠, 로베르 르빠쥬 같은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예술가들을 만날 수 있었을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다. 홍상수 같은 우리 영화감독이 이 페스티벌의 넥스트 디렉터(The NextDirector)에 선정되어 특별회고전을 갖는 영예도 얻지 못했을 것이다. 뉴욕이니까 가능한 일이라고? 영국의 바닷가 도시 브라이튼(Brighton)의 브라이튼 페스티벌, 호주의 아들레이드 페스티벌도 다 낯설다는예술로 성공한 페스티벌이자 극장들이다. 이밖에도 필자가 잘 모르는 이런 축제나 이런 극장들이 수없이 많을 것이다.

 

사람도 함부로 바꾸지 말아야 한다. 개관축제 소식과 함께 벌써 지금의 예술극장 예술감독이 내년 5월이면 임기가 끝난다고 하는 소리도 들렸다. 만일 시작하자마자 예술감독이 바뀌면 그와 함께 3년 동안 호흡을 맞춰 작업했던 여러 사람들도 바뀌는 것인가. 그래서 지금까지 힘들게 쌓아 온 이런 저런 네트워크도 사라져 버리는가. 그래서는 안 된다. 필자는 2008년 아시아예술극장 연구를 하면서 유럽 여러 극장을 둘러본 일이 있었는데, 영국의 국립극장을 들렀을 때 거기 예술감독은 당시 기준으로 45년간 5명 째라는 이야기를 들은 바 있다. 그러니까 한 예술감독이 평균 10년 가까이 자리를 지킴으로써 오늘날의 세계적인 국립극장이 되었다는 것이다. 문화선진국이라고 하는 곳은 모두 이런 식이다. 좋은 뜻을 가지고 좋은 성과(이미 광주에서 공동 제작한 여러 공연들이 해외로 가기로 되어 있다는 성과도 있다)를 올릴 수 있는 사람들이 모인 조직의 안정성은 무엇보다 중요하게 지켜야 할 가치이다. 아마도 지속가능성의 가장 우선순위에 둬야할 가치인지도 모르겠다.

 

지금, 문화전당과 예술극장을 지켜왔고, 지켜갈사람들은 컨셉의 일관성을 유지하고, 예상되는 난관을 뚫고 나가려면 우직과 뚝심으로 똘똘 뭉치길 바란다. 힘들수록 서로 가치를 공유하고 비전을 나누고 신뢰를 누적해 가야하며, 서로 어깨를 다독여야 한다. 난관은 별게 아닐 수도 있다. 여기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마음속에나 그것들이 있을테니까. 그들의 마음만 움직이면 된다. 더불어 지나치게 컨셉을 의식하여 유연성을 잊어서도 안 될 것이다. 컨셉을 버리라는 것이 아니다. 그 안에서 관객들이 덜 낯설게 하는 방법은 많을 것이다. 단계별로 관객들에게 난이도를 달리하는 방법도 있지 싶다. 길게는 문화감수성을 가질 시민이든, 꿈 많은 예술가든 교육으로 함께 문제를 풀어가는 것도 같이 준비하고 있을 것으로 믿는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지켜가는 데는 광주의 협력이 절실할 것이다. 아니, 협력이라기보다는 주체적으로.... 이 막강한 자산과 컨셉과 지속적인 지원과 좋은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때로는 (선의의) 싸움도 불사하는 광주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우리는 관심은 가지되 지켜보고, 응원하자. 섣부른 잔소리는 참자. 이 좋은 문화적 자산이 B급이라도 되기 위해? B급이 안되기 위해!

 

이용관(한국문화예술경영학회장/한국예술경영연구소장)

첨부파일 a [칼럼]아시아문화전당 예술극장 개관 축제를 보고.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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